출향인 사랑방

이나시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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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밤[홍광혜] 작성일09-04-28 17:06 조회2,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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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다음카페[군위는 영원한 나의 고향]에 올렸던 글입니다.------

 

제가.............

감히 얘기하려는 이나시오[가톨릭의 본명]아저씨는

저랑은 한세대가 차이나는 어른이시라 어떻게 전달 될런지 ......

그래도 이나시오 아저씨께는 늘 감사하는 맘을 갖고 있던터라 

추억속에 아저씨가 나오는 몇조각의 퍼즐이 있어 이곳에 얘기 하려 합니다.

 

 

*첫번째 얘기

 

그 옛날에

성당에 새로 부임하시는 신부님께서 텔레비젼이란걸 갖고 오셨던 모양이다.

그 시절에 난 TV가 어떻게 생겼는지....

들어보도 못했고 책에서도 보지못한 그런 물건이였는데....

이나시오 아저씨가 사다리 만들수 있는 크기의 대나무에 안테나를 매달아 이곳 저곳

옴겨 다니며 전파를 잡으려  했는데 처음보는 TV엔 그냥 까맣게만 나오니....

ㅉㅉㅉ~안되는구나 군위에선 텔레비젼이 있어도 못보는구나 하시며 신부님과 함

께 난감해 하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난 텔레비젼이 저렇게 생겼구나 했다.

 

*두번째 얘기

 

이나시오 아저씨가

의흥에 계셨던걸 기억한다.

의흥에 한전 전기가 들어오기전에 전기를 만들어 파는 뭐라해야 할지?????

요즘 인터넷전용선처럼 발전을하여 필요로하는 곳에 전붓대를 세워가며 전기를 파는

업이라면 맞을것 같다.

의흥계신분은 아실것 같은데....

한전전기가 들어 오면서 철수해서 군위로 오셨던걸로 안다.

 

아저씨가 의흥 계실때

성당 신부님께서 공소[특정 본당(本堂)에 속하는 공식적 교회단위로 주임신부가 상주

하지 않는 지역신자들의 모임장소]에 가는일이 있는데 의흥과 인각사 건너편(?)쯤의

공소를 하루동안 방문하실때 따라간적이 있다.

그때 신부님은 50CC쯤되는 오토바이를 아저씨는 250CC 오토바이를 타셨는데 난

아저씨뒤에 타고 군위서 포장안된 자갈길을 달려 의흥에 도착해서 한참을 놀고 있

는데 신부님께서 오셨던 기억이 있다. 

 

외가집 가기위해서만 와봤던 의흥인데....

 다른목적으로 와서 지척이 외간데 가보지 못하는 맘이 왜 그래 싱숭생숭했던지....원

 

두번째 목적지인 인각사가 있는 동네를 갔는데 

일년에 한두번 오시는 신부님을 맞이하는건 동네 잔치 수준이였을게다.

게다가 복사로 따라오는 사람이 아이일땐 그를위한 준비가 또 있을것이고

개를 잡아 수육으로 나왔는데 개껍데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수육접시를 내앞에 놔주

시기 까지 ... 기억한다.

따로 껍데기 벗겨 불에 그을러 냇가에서 씻은후 삶으면 불내,노란내가 존득함과 함께

잊지 못하는 맛이된다.

복사로 따라온 아이를 위해 제사상에 흔히 올리는 무지개 사탕과 그쯤의 과자들....

나중에 갈때 먹으라며 돌가루종이에 싸주던 그 인심도 기억한다.

 

동네앞 냇가에서 조금윗쪽에 절경이 하나 있었는데...

직벽과 물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했다.

난 이기억을 바탕으로 소나기류의 소설을 써 보겠다며....

노트두세장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를 여러번 할만큼 이곳의 풍경을 기억한다.

 

그리고 인각사에서 신부님께서 스님과의 만남을 보게되고 어설픈 신앙의 아이가 느끼

는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유일신이 어떻고....예수님의 대리인이신 신부님이 스님과 얼굴을 마닥뜨리며 얘기하

는....

요즘엔 신부님대 스님 족구대회도 있다더만.....그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과 함

께....

 

*세번째 얘기

 

이나시오 아저씨가 가톨릭 대구대교구 군위공원묘원을 조성할때 (아마) 책임자로 소

임을 하셨는데....

저의 조모께서 "내 죽거든 어쩌든동 니가 책임지고 성당묘지에 묻어 다오"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하신 모양이다.

아저씨께서는 연로하신 아저씨 어머님 친구분이신 저의조모님께 그러마 하고 안심 시

키셨는데....

이것이 아저씨껜 큰 부담의 약속이 되신것인지.....

공원묘원준공은 한 일년여 앞둔 시점에 저의 조모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위독하실때 할머님께서 여러번 얘기한 건이라 또 고향이며 성당묘지등등 할머님을 모

시기에 그만한 조건이 없었지만 완공이 안된상태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는데 ....

 아저씨께 상의를 하니 가매장을 해서 공원묘원이 완공된뒤 이장하는것을 도와 주시

는 큰 편의를 제공해 주셨다.

 뭐라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도움이 였다.

완공후 몫좋은 자리를 구매할수있게 도와도 주시고.....

 

이나시오 아저씨는 저에게 자네 조모님과 약속을 지킬수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면

서 오히려 저에게 감사표시를 하셨다.

내가 고향 군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는것은  이나시오 아저씨의 이말 한마디와

출향인에 대한 편의제공으로 고향 사랑하는 맘을 갖게 하는데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라 여긴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조각의 퍼즐이지만  잊을수없는 분이시라 .....

내가 기억하고 내 자식이 알아야 함으로 남겨 놓는다는 차원으로 글을 올림니다.

 

제되로 찾아뵙지도 못하고 ....

죄송할 따름이다.

내내 건강하시길 바랄뿐......

 

 

 

                          0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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