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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사랑방

내고향 군위 정류소 풍경

  • 작성자 : bruce
  • 작성일 : 09-07-22 16:07
  • 조회수 : 3,269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잠시 햇살이 비쳤다. 이번 비로 홍수가 난데도 적지 않은 모양인데 군위나 소보는 큰 피해가 없다는 보도를 들었다. 다행한 일이다. 불현듯 비 내린 시골의 산천이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시간도 좀 났다. 지난 토요일엔 오래전에 우리가 밟았던 여정을 다시 한 번 밟아보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나 다른 도시로 유학한 사람들의 귀향은 대체로 북부정류장이 출발점이었다. 이 이름은 소보가 대구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데, 이것을 나는 오랫동안 의식하지 못했다. 어릴 때는 도시 특히 큰 도시는 항상 올라가는 개념이었고 시골은 내려가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크고 높은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관념이다. 귀향길의 출발점으로 북부정류장은 크고 복잡했다. 대체로 명절이나 주말에 이용한 정류장이었기에 그렇기도 했지만 매표소 앞은 늘 사람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서둘러 비좁은 개찰구를 나가 버스에 오르면 빈 좌석 하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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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은 북부정류장 역시 그대로 두지 않았다. 공간 자체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표 파는 창구는 한산했다. TV 앞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휴게실에도 빈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토요일 오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북부정류장의 규모가 얼마나 위축되었는지 알 수 있다.

줄도 서지 않고 느긋하게 개찰구를 빠져 나가 군위/안동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승객은 열 명도 안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골이나 지방으로 가는 사람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차창을 통해 밖으로 내다보니 시선에 잡히는 것은 푸르디 푸른 산과 들, 이제 민둥산이니 벌거숭이산이니 하는 것은 옛 말이다.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냇물은 시뻘건 황토물이 아니라 옅기는 해도 녹색에 가까웠다. 어릴 때 여름의 강은 거의 홍수와 동의어였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발전인가. 근대화와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때부터 공을 들인 치산치수가 성공했단 말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푸르른 산천은 인간의 부재를 뜻하기도 하기에 씁쓰레한 감회 또한 내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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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정류소, 어릴 때 군위읍은 꽤 큰 도시였고 정류소는 그 심장부였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군위 장터나 송구시합을 위해 군위국민학교를 갈 때면 거치게 되는 정류소는 언제나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왠지 가슴 설레는 곳이었다. 그러나 토요일에 장날까지 겹친 군위정류장은 차라리 적막했다. 보따리 이고 짊어진 장꾼들의 풍경이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줄을 이어 우시장으로 향하던 슬픈 눈의 소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 많던 장날의 소는 어디 갔을까? 3_180.jpg 8개 면에서 사람들이 줄에 줄을 이어 오가던 교통의 요지 군위 정류장이 왜 저리도 쓸쓸하게 변해버렸나. 매표소 앞에는 서너 명이 한가하게 돈과 표를 교환하고 있었고 여남 개 되는 휴게실 의자도 거의 비어 있었다. 그나마 정류장 손님들은 평균 연령이 70도 넘어 보였다. 4_136.jpg 5_84.jpg 통계 자료를 보면 현재 군위의 인구는 8개 면을 다 합쳐도 2만 6천 밖에 안 된다. 이게 얼마나 축소된 수자인지는 인구추이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1965년에 8만, 1975년에 6만 7천, 1985년에 4만 5천, 1995년에 3만 4천, 2005년에 2만 8천. 세대 당 인구를 보면 65년에 6,2명이던 것이 현재 2,2명으로 줄어들었고 인구밀도는 1965년 136에서 42명으로 줄어들었다. 과연 군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2009060315410247215_154829_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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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군청은 얼마 전부터 군위를 살려내기 위해 브랜드 하나를 만들었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라는 브랜드다. 대구 경북 권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문화가 대세인지라 문화브랜드를 창안해 낸 것이다. 그렇지만 삼국유사가 군위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잘 알듯이 삼국유사는 고려 때 일연 스님(1206~1289)이 썼고 일연 스님은 경산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내용 중에 군위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는 없다.

군위와 삼국유사의 연계는 삼국유사가 인각사라는 절에서 집필되었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사적 374호로 지정된 인각사는 고로 화북리에 있다. 인각(麟角)은 기린의 뿔이란 뜻으로 인각사의 자리가 기린의 뿔이 떨어진 곳이라는 말도 있고 인각사의 위치가 지형상 기린의 뿔에 해당되는 곳이란 말도 있다. 옛날에는 한국에도 기린이 살았던가? 아마도 중국을 통해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이 되어 상상 속에서 선호된 이미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연이 78세 때 국사의 자리를 물리치고 당시 90이 훨씬 넘은 노모를 모시기 위해 이 인각사에 주지로 부임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5년 만에 탈고했다. 그리고 얼마 뒤 84세에 입적했다. 당시에 저렇게 오래 살았다니, 놀랍지 않는가. 하긴 성경에도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예배소서).

삼국유사란, 삼국사기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와 문학사에 둘도 없는 보고다. 효성이 지극했던 일연이 노모를 모시기 위해 선택한 절인데 여기서 한국사에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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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군청은 2014년까지 거액의 예산을 들여 삼국유사 문화브랜드 조성에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 얼마 전에는 고김수환 추기경 추모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도 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과연 일연이 21세기에 다시 살아나 군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인가? 800년 전에 죽은 사람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향후 일연이나 김수환 같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떨까?

자식 키우는 우리 동창들 좀 분발해 주길.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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